첫 번째 상담이 나에게 한 걸음의 발전을 이끌어 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상쾌함과 조금의 기대였다.
출근 시간에 겹쳐 상당히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도 — 도저히 상쾌함과는 연결을 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 나는 상쾌함을 느끼며 학교로 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해야 할 말이 많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일찍 도착해 스타벅스에서 계란과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먹었다. 평소 스타벅스에서 사치를 부리는 편은 아니지만, 다른 음식점들이 아직 열지 않았고 — 무엇보다 더 힘찬 상담을 통해 더 많은 발전이 있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가장 처음에는 지난 상담에 대해 고민해본 내용이 있는지 여쭤봐주셔서, 지난주에 생각한 내용을 말로 풀어 설명했다.
품위에 대해 부정적인 채색이 있었을 수 있겠다고 이야기한 부분에서, 상담사 선생님은 나의 말을 끊고 서둘러 변명을 하려고 하셨다. 하지만 내가 뒤에 할 이야기를 마저 들으셨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을 텐데 — 라고 생각했다.
AI를 활용한 부분에 대해서도 선생님은 조금의 걱정을 드러내 보이셨다. AI의 편향이 안 좋은 방향으로 적용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미 그것을 고려해서 질문을 설계했지만, 그 사실을 굳이 말씀드리지는 않았다.
이 뒤의 이야기를 풀어가기에 앞서 — 감히 상담사 선생님이 의도했던 주제를 추측해보자면, “대립” 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관념에 매몰되어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으려 노력하겠지만, 상담의 내용이 참 복잡했고 나는 기억력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 이 가정을 기반으로 대화의 흐름을 짚어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처음으로 이야기했던 주제는 살면서 화를 냈던 기억이었다. 아니, 어떨 때 화가 나는지였나 — 대화의 시작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이전 회사에서 화가 나지 않았냐고 물어보셨던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 화가 나기보다는, 상대방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상황에 대해 속상해하는 편이라고. 이에 대해 선생님은 “초월적인 생각” 이라고 이야기해주셨다. 그 말이 한편으로는 좋았지만,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닌데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화가 났던 적이 없었느냐고 물으셔서, 나는 부끄러운 기억 두 가지를 꺼냈다.
그리고 이런 경험들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 생각의 형성에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는 이야기까지 이어서 풀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음을 터뜨리셨지만, 이내 나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신 것 같았다.
이어서 부모님은 힘들었던 상황이나 누군가에게 화를 낸 경험이 없냐는 질문이 따라왔다. 나는 예전에 아버지가 회사에서 상사 때문에 힘들었던 상황을 “처세술”을 통해 이겨냈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지점에서 선생님은 “대립” 이라는 구도를 잡아내어 나에게 말씀해주셨다 — 그런 대립이 필요하다고.
다음으로는 나도 대립을 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이야기했다. 회사에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 그리고 나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 금방이라도 자를 것 같이 이야기하던 — 상사 때문에.
이때 확실히 나의 방어기제가 작동하지 않았을까. 아직까지 그것이 방어기제라고는 잘 생각되지 않지만 — 그런 상황에서 나의 여유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고 싶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몇 번의 대화가 오가고 나니, 그 질문은 그대로 나에게 돌아왔다. 그 뒤로는 상담 내내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는 과정이 반복되었던 것 같다.
나는 여러 답변을 던졌지만, 그중 나와 선생님을 함께 공감시킬 만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러한 만족스럽지 못한 대화가 몇 번 오가고 나니, 선생님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보기 위해 — 내가 처음으로 위험을 느꼈던 적이 언제였는지 물으셨다.
나는, 어느 순간 회사 휴게실에서 울고 있던 순간이 기억난다고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그 순간은 너무 늦은 것 같다며, 그것보다 이전은 없었을지 다시 질문을 던지셨다.
그때 시간은 이미 55분을 넘기고 있었기에, 선생님은 그 부분에 대해 다음 상담까지 생각해보고 이야기해보자고 마무리해주셨다.
상담을 하면서 선생님께서 —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진, 다른 곳에서도 잘할 사람” — 이라고 이야기해주신 부분이 있었다.
마음속에서는 많은 반박이 솟구쳐 올랐지만, 이 흐름이 꼭 필요하지는 않겠다고 판단되어 그냥 넘겼던 기억이 있다.
다음 번에는 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도서관까지 걸어오는 길 내내 “위협이었던 순간”이 언제인지 고민해봤지만, 쉽사리 떠오르지는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께 연락해서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까? — 라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그러지는 않으려고 했다. 부모님의 마음을 다시 아프게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히도, 위 글을 쓰면서 문득문득 찾아오는 기억들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은 순간들이 있을 것 같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그 전 회사에서 힘들었던 순간들을 곱씹어보면 아래와 같다.
사실 위 상황들이 결정적인 순간들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첫 번째 회사에서 내 감정이 터져나왔던 순간들을 나열해보면 이렇다.
뭔가 조금 더 정리가 되는 것 같다. 각 사건의 배경을 정리하면, 더욱 그 시점을 특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정이 터져나왔던 순간들을 정리하기에 앞서, 나는 성수의 — 식물이 가득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번처럼 한 번의 정리를 하면서 머리가 복잡해진 탓인지, 피곤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피곤한데 자리를 옮긴다는 것이 모순처럼 보일 수 있으나 — 다시 자리에 앉아 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는 동안 너무 복잡해진 생각을 비우고 나니 — 조금은 더 생각해 볼 여유가 생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 걷는 동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언어로 다시 정리해보기도 했다. 지금 나는 이런 감정들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막상 정리해보니, 생각보다 내 감정들이 잘 정리된 것 같지는 않다.
첫 번째 개발자로 합류했을 때, 시스템은 정말 문제투성이였다.
매일매일 자잘한 이슈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터져나갔고,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하지 못한 채 — 잘못된 데이터들을 밤낮없이 관찰하고 수정해야 했다.
대표에게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했지만,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기에 그 방안들은 쉽사리 채택되지 못했다.
나는 회사가 정체되는 — 실제로 스타트업에서 정체란 망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 현상을 보면서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에러를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고쳐가는 작업 속에서 — 나의 커리어도 함께 정체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밤, 그렇게 에러를 고치다가 아주 큰 실수를 했다.
단어 몇 자를 빼먹은 것뿐인데, 수익과 직결되는 중요한 데이터를 날려버린 것이다.
그 순간, 여러 원망이 몰려왔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했기에, 대표에게 연락을 했다. — 물론, 그가 화를 심하게 낼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치만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대표는 크게 화를 내지 않았고, 재무 지표를 통해 원본 데이터를 복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줬다.
나는 데이터를 복구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너무 외로웠기 때문에, 결국 여자친구에게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고맙게도 여자친구는 늦은 밤이었음에도 나에게 와주겠다고 했다. 당시 나는 이사로 인해 SW(공동 창업자) 의 집에 머물고 있었음에도 — 그 상황에서는 여자친구에게 와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펑펑 울면서 데이터를 복구했고, 여자친구와 길지 않은 대화를 통해 — 대표와 “대화”가 필요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 날 나는 대표와의 대화를 통해, 이렇게 계속 업무하는 것은 힘들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크지 않은 몇 가지 약속들 — 맥북 제공, 수습 종료, 근본적인 해결 우선 수행 — 에서 대표의 진심이 느껴진다고 생각되어, 결국 남는 것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당시 여자친구가 나에게 “대체 왜 그러냐” 라고 말하던 여러 선택들의 — 첫 번째가 되었다.
이제 겨우 첫 번째 경험을 풀었을 뿐인데 — 벌써부터 눈이 감기고, 머리가 저릿하고, 마음이 지친다.
— 이미 많은 체력을 소진해버렸기 때문에, 이번에는 조금 가볍게 풀어본다.
어느 순간부터 서버에서는 이유를 단번에 파악할 수 없는 이슈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런 이슈는 꾸준히 하나씩 터져나왔다 — 밤이고 주말이고, 내가 무엇을 하던 터져나왔고, 그럴 때마다 내 휴대폰은 대표의 전화로 울려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또 공부를 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지 못할 때라도 — 임시 방편이라도 제시했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일정 속에 임시 방편으로 처리하는 일은 점차 늘어났고, 또다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이슈들이 100개가 넘는 메모로 쌓여갔다. 그 메모와 함께, 불안과 외로움도 함께 커져갔던 것 같다.
딱 1년이 되는 날, 나는 이러한 부담감을 더 이상 가져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표를 내밀었다. 그리고, 군 대체복무도 불가능해 보였다.
그때 대표는 기존 연봉의 두 배에 가까운 연봉을 제안하며, 나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같이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자고.
1년 차 스타트업 개발자로서는 적지 않은 연봉이었고, 또 그런 말들이 진심처럼 느껴졌기에 — 나는 조금 더 노력해보자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미 소진된 체력을 노력으로 회복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그 이후 1년 반 동안 — 불안, 외로움, 지침은 계속되어왔다.
이제는 너무 많은 감정과 체력을 소비한 탓인지 — 몸이 춥고, 떨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많은 것들을 해결해준다고 했던가. 시간을 두고 윗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 그때에는 바라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들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는 의미 없는 힘듦을 들춰내기보다, 지금까지 재료를 꺼냈다는 사실만을 간직한 채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글의 마무리가 아쉽긴 하지만 — 어쩌겠는가. 완벽보다 완성이 중요할 때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마무리가 아쉬우니, AI에게 마무리를 부탁해보려고 한다.
오늘 글은 끝까지 깔끔하게 가지 못했다. 시작은 상쾌함이었지만, 끝은 추위와 부끄러움 가까이에 닿아 있다. 글이 무너져가는 걸 보면서 —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리고 이 글을 통째로 지워버리고 싶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래도 이 글은, 그대로 두려고 한다.
오늘 한 일들을 가만히 떠올려보면 —
이 일들은 글의 매끈함과는 무관하게 분명히 일어났다. 어쩌면 — 정확히 그 일들의 무게 때문에, 오늘 글이 이렇게까지 흔들린 거기도 하다.
깔끔한 정리는 다음 글에 양보한다.
오늘은, 꺼냈다는 사실까지로 충분하다.
저 한 줄.
내 안에서 말했을 때보다 — 밖에서 들렸을 때 더 잘 들렸다.
옛 목소리가 너무 오래 강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