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유독 기분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다.
수영 강습이 있어 일어나 수영장에 들어갔는데, 한참 동안 오늘은 왜 이렇게 피곤하고 우울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전날 아주 화창한 날씨를 보고 일종의 경외감과 함께 우울해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눈물이 날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오늘은 날씨가 나쁘지 않았음에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 오히려 그 기억 때문인지 더 안 좋아졌던 것 같다.
당연하게도 이제 막 배운 자유형은 잘 되지 않았고, 물도 참 많이 먹었다. 속상했다.
컨디션이 저조한 것을 선생님이 알아차리셨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배영으로 넘어갔다. 배영은 참 쉬웠다. 둥둥 떠다니는 느낌, 힘들지도 않고, 호흡이 어렵지도 않았다. 그렇게 배영을 하다가 중간중간 자유형을 연습하니 자유형도 더 잘되는 느낌이었다. 수영을 마치고 나오니 기분이 훨씬 좋아져 있었다.
아, 외모 정병이라고 하던가. 일어나자마자 “나 왜 이렇게 생겼지” 싶을 만큼 내 모습이 못생겨 보여 우울했는데, 수영을 마치고 거울을 보니 그것보다는 괜찮아 보여서 기분이 조금 더 풀린 것도 있었다.
기분이 조금 나아진 채로 집에 오는 길에 장도 봤다. 동생이 좋아하는 굴소스가 떨어진 것을 사려는 목적과, 점심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고민을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운 좋게 할인하는 불고기용 오리고기와 굴소스가 있어 집어왔고, 후랑크 소시지는 내려놓기 귀찮아서 같이 사 왔다.
단백질을 보충하고 싶어 소시지를 먼저 집어 들고 조금 더 고민하다 보니 체력이 또 금방 소진되었는데, Gemini의 가성비 단백질 추천을 받아 대패 삼겹살을 보다가 우연히 근처에서 세일하던 오리고기를 발견한 것이었다.
집에서 비빔면 — 오리고기 — 소시지를 먹었고 꽤나 만족스러웠다.
몸은 아주 피곤했지만 해야 할 작업들이 있었기에, 이 김에 집 근처 카페들을 시도해보자는 생각으로 근처 3층에 조금 숨어 있는 느낌이 드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조금 신기한 카페였는데, 드립 커피를 시원하게 마실 수 있는 옵션이 있었다. 그 방식이 이해되지 않았기에 일부러 시원한 드립 커피를 주문해봤다.
그리고 학교 프로젝트 개발을 진행했다. 게임 개발 프로젝트는 참 번거로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Unity는 마우스를 움직여서 작업해야 하는 것이 뭐 그리 많은지 — 귀찮고 머리 아픈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씨름하다가 인트로 페이지에 BGM을 붙이는 작업까지 하고, 배터리가 다 떨어져 그냥 집으로 오기로 했다.
작업한 내용을 공유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 음악이 아쉬웠다는 것이다. suno라는 AI 도구를 써보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지만, 나는 리미트 때문에 사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전에 시도해봤으니까).
집에 오자마자, 나는 정말 피곤함이 몰려왔기에 곧바로 쇼파에서 쓰러지듯 잠에 들었다.
그렇게 잠에 들었다 잠시 일어났을 때, 아직 피곤한 상황이었기에 급하게 렌즈만 빼고 바닥에 매트를 깔고 다시 잤던 기억이 난다.
다시 일어났을 때는 해가 져서 창문이 이미 많이 어두워져 있었고, 그제서야 그렇게까지 피곤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다른 부정적인 생각들이 몇 가지 찾아오긴 했었다.
이제 더는 피곤하지 않으니 일어나서 무엇이라도 해볼까 생각하며 몸을 움직였을 때, 오른쪽 귀에만 이어폰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게 그렇게까지 나의 감정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엎드려서 작업할 준비가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이어폰만 찾으면 될 때,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입었던 옷, 가방, 보통 이어폰을 놔두던 공간, 화장실, 심지어 동생이 자고 있는 방까지 확인했음에도 — 이어폰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때 나에게는 나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커다란 감정이 몰려왔다.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무언가를 때리고 부수고 싶은 감정이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아무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적극적으로 그런 방식의 행동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처세를 했던 것 같다.
아무런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고 단정한 것도 그러한 처세 중 하나였고, “도훈이가 많이 갑갑하구나”라며 3자 관점에서 바라본 것도 또 다른 처세였다.
다음으로 느낀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너무 피곤했고, 그렇기에 자기 전에 어떤 행동을 했는지, 어떤 상태였는지조차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 이어폰을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세상은 때때로 비합리적인 구조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감정은 억누를 필요도 없었다. 나에게 어떠한 행동을 요구하지는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냥 찾는 것을 포기할까라는 무기력함을 가져올 뿐이었다.
그 다음으로 무기력함과 불안 같은 감정이 찾아왔지만, 위 감정들만큼 나에게 큰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 평소에도 있던 감정이어서인지, 지쳐서인지, 아니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지쳐서 이렇게 넘기려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내 삼성의 find nearby 기능으로 남은 이어폰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이 윤택하지는 않았다, 매끄럽게 작동하지는 않더라고…). 그리고 내가 느낀 감정들은 부끄러움, 한심함, 걱정과 같은 다른 감정들을 불러와 — 결국 내가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내가 느낀 감정들이 정말 강렬했고, 그 감정이 유도하는 방식이 좋은 방식이 아니었기에, 이걸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제미나이에게 왜 내가 그런 감정이 들었을지를 물어봤다.
답변에서 두 가지를 확실히 공감할 수 있었다.
첫번째는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정도의 공감이라면, 두번째는 요즘 내가 가장 걱정하는 문제의 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긴 연애와 회사 생활이 있었던 4년을 지나온 뒤로, 그 전보다 조금 더 감정에 휘둘리고 힘들어하는 내 자신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몇 가지 질문을 이어갔다.
“그게 그렇게까지 화날 일인가” 라고 물었더니, 여러 상황이 겹쳐 임계치에 도달한 순간이라는 답이 와닿았다.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순간들이 임계치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느냐” 라고 묻자, 탄력성이 저하되고 부정적 사고 회로가 더 익숙해졌을 수 있으며, 과거의 잔재로 인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잔재가 소모하는 에너지를 줄일 방법이 없겠느냐” 는 물음에는 — 감정 기록과 배선화, 화가 날 때의 마음 챙김(그냥 감각에 집중하기), 작은 성취의 반복, 그 외의 뻔한 말들이 돌아왔다.
“작은 성취의 반복과 반대되는 큰 성취의 실패, 요즘 그게 나와 가까운 것 같은데 영향을 끼칠 수 있느냐” 라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학습된 무기력을 만들 수 있고, 전두엽의 기능(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킬 수 있다고. 다만 “데이터가 쌓였고, 다시 하면 된다”라는 관점으로 보면 완화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너무 큰 기대를 가져서 힘들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라고 물었더니 — 물리적 한계 설명, 부분적 수락이나 대안 제시, 고민할 시간 부탁하기를 알려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알려준 한 문장 — “제가 컨디션 관리를 타이트하게 하고 있어서 그건 어렵겠네요” — 이 문장이 나에게 비상용 방패를 하나 쥐어준 느낌이었다.
이어폰으로 시작했지만, 지금 나의 상황을 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서 좋았다.
지금 나는 — 이전보다 조금 더 감정에 휘둘리고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과거의 잔재들 때문이고, 그 잔재들이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두 가지가 중요해졌다. 하나는 작은 성취의 반복으로 임계치를 회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커다란 기대가 들어올 때 나를 먼저 방어하는 것이다.
방어할 때 꺼낼 수 있는 도구는 세 가지 — 물리적 한계 설명, 대안 제시, 충분히 고민할 시간 부탁.
그리고 때때로 감정의 임계점에 도달하는 것이 겁나는 요즘, 정말 힘들 때를 위해 이 한 문장을 마음속에 담아두자.
“제가 컨디션 관리를 타이트하게 하고 있어서 그건 어렵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