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로

독서모임에서 있었던 일

글을 쓰게 된 배경

지난 상담에서 선생님은, 다음 상담까지 마음의 경고등이 처음 울렸던 시점을 생각해보고 이야기해달라고 하셨지.

그래서 그 날 나는 “처음 경고등이 울린 시점”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어. 아주 강렬한 기억이 있으면, 그보다 내 감정을 작게 흔들어놓은 사건들은 쉽게 덮어씌워지기 마련이거든.


그렇다 보니, 이번 사건을 마음의 경고등이 울린 순간으로 속단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

나도 알아, 이 사건을 내가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거.

근데 내 감정에 끼칠 영향을 과소평가한 순간이 있었다면, 과대평가하는 순간도 있어야 적절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지 않겠어?

그리고 — 내 감정에 솔직해져보자고.


그리고 이 글을 “부끄러운 내 감정”으로 숨기지는 않으려고 해.

누가 이 글을 다시 보더라도 “그럴 수 있었겠다” 싶을 정도로, 내 감정을 잘 풀어보자고.

만약 여기에 등장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보게 되더라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으면 해. 너를 탓하거나 그러려는 게 절대 아니니까.

사건의 배경

전날이었나? 그럴 거야. 모임이 있기 며칠 전, 모임장이 실수로 공간을 예약해버린 나머지 급하게 독서모임을 모았었어.

모임장은 아마 걱정이 좀 컸던 것 같아. 이번 모임이 모아지지 않으면 그 장소를 일정 기간 다시 대관할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사람들이 잘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추측이 같이 있었겠지.

그도 그럴 게, 어린이날에 예정되어 있던 보드게임 카페 일정에 모임장의 생각만큼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었거든. 자꾸만 “그 날 뭐 하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봤었으니까.


나는 모임장에게 — 이런 모임을 준비하고 진행해주는 것에 —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모임장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정에 참가해야지 생각했어. 사실 당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고려하면 참여하기로 한 게 아주 잘한 선택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해 — 성민이와 하는 프로젝트, 학교 프로젝트, TOPCIT 공부,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기까지, 내가 유기하고 있던 할 일들이 꽤 있었거든.

모임장은 꽤나 걱정을 했던 게 맞는지, 내가 첫 번째로 참여 의사를 밝히자 고맙다고 개인톡을 보냈어.

그렇게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지.


모임 당일 — 그러니까 이 글을 쓰는 기준으로 어제 — 나는 늦게 일어났고, 기왕 참석하는 김에 나를 조금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책을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교보문고 베스트셀러를 뒤지다가 발타자르 그라시안이라는 철학자를 알게 됐어. 그 사람이 쓴 처세술 도서를 골라 Ebook으로 가져갔지.

이번 글은 그 책에 대한 글은 아니니, 그 이야기는 따로 또 작성해보도록 하자.


우리는 자율 독서를 하고, 밥을 먹고, 칵테일 바까지 가는 일종의 풀 코스로 시간을 보냈어.

사건과 감정

그럼 이제 모임이 어땠는지 이야기해봐야겠네?


짧게 정리해보자면 안맞는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 물론 이렇게까지 짧게 요약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건 나도 알아. 그래도 하룻밤이 지나고 나서까지 이 생각에 어느 정도 매몰되어 있다는 거, 그것만 알아줘.


가장 안맞았던 부분을 떠올려 보자면, 모임장에게 무시받는다는 느낌의 연속이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

그런 느낌은 내가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던 거니까, 모임장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것을 알아줘.

이렇게 추상적으로만 말하면 아무도 — 미래의 나조차도 —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기억이 잘 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감정을 느꼈던 순간들을 나열해볼게. (나는 이런 별로 좋지 않은 기억들을 빨리 잊는 편인 것 같아.)


나 진짜 구체적으로 사실과 감정들을 잘 나열하고 싶은데, 기억해내려고 하는 것조차 진짜 너무 힘드네 ㅠ

내 마음이 불편했다는 걸 설득하는 일은 참 어려운 것 같아. 그냥 이렇게 정리하는 게 내 최선이었다고 알아주면 고맙겠어.


특히 “존경”에 대한 대화는 내 감정이 크게 요동쳤던 순간인 것 같아서 아래에서 따로 다뤄볼게.


또 다른 안맞았던 부분을 떠올려보자면 — 그 사람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내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큰 소리로 “잘 안 들려요”라고 말하던 사람…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어수선하고 조금은 소란스러웠던 분위기…


그냥 이런 것들이 나하고는 잘 안맞았던 것 같아.

존경에 대한 대화

대화는 이렇게 시작됐어.

나는 “반말을 시작하는 순간 상대에 대한 존경을 못하게 되는 것 같아서, 반말을 지양하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했어.

그러니 모임장이 — 그건 존경이 아니라고, “존중 아니냐”고, “존경은 더 낮은 사람이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보고 하는 것”이라고 — 이야기하더라고.


근데 나에게는 존중이 아니라 존경이 맞았거든. 내가 생각하는 존경은 나와 다른 환경에서 다른 능력을 키워온 사람에 대한 것이었거든. (실력과 무관하게, 나에게 있어서 예술가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는 예시를 들었어.)

그렇게 이야기하니, 다들 존경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그냥 우러러봄이라고 했던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아..


나는 그 때 그냥 포기했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제 단어 선택이 적절하지 못했을 수 있겠네요. 제가 철학에 대한 도서들을 읽다 보니, 이런 단어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라고 이야기했지.


그러니 모임장이 “어느 철학책도 존경이라는 단어를 그런 방식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더라고.

그때 내 감정은 — 이렇게까지 나를 존중하지 못할 수도 있나? — 라는 생각이 조금 들었어. 나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몰아세우는 것 같았거든.


그렇게 “죄송해요 또 제 착각이었네요”를 마지막으로 이 대화는 끝이 났어.

제미나이와의 대화

모임을 끝내고 집에 와서, 내가 느낀 감정들을 조금이라도 풀어보려고 제미나이와 대화를 시작했어.

피곤했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고, 제미나이도 그냥 쉬고 내일 정리해보라고 하더라.

그럼에도, 그냥 생각나는 것들을 제미나이에게 툭툭 던졌던 것 같아 — 나중에 이렇게 글을 쓸 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물어본 것들을 다시 돌아보니 조금은 웃기기도 한데, 한 번 나열해볼게.


먼저 위 상황을 이야기하고, “내 스스로가 무시당하는 것에 대한 방어기제가 있는 것 같다”고 물었어.

그러니 제미나이가 그건 “나를 지켜준 고마운 신호”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나는 “이 방어기제가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라고 다시 질문을 던졌어.

그러니 세 가지를 이야기하더라고 — ‘가스라이팅 차단’, ‘내가 생각하는 스스로의 가치 보존’, ‘에너지 낭비 방지’. 그리고 이런 신호를 기반으로 관계를 ‘선별’하라고 하더라고..


이 답변을 보고 나는 이것도 일종의 가스라이팅일 수 있지 않나 싶어서, 크로스체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이에 대해 질문을 했는데, 사실 그 답변은 별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어 — 가스라이팅을 시작한 존재에게 그걸 다시 물어본다는 것은 이상하니까.


대신, 제미나이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시간을 두면, 내 스스로가 이 상황을 다시 긍정해버리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어.

그러니 ‘이해’‘용납’을 구분하라고 하더라고. 지금처럼 상대를 이해하되, 나 스스로를 존중하여 용납할지 여부를 결정하라는 말이었어.


이렇게까지 대화를 하다 보니, 이런 관계를 끝내는 극단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것 같아서 — 그게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고, 다른 어떤 관계는 쉽게 끝낼 수도 없을 테니까 — 다시 한 번 제미나이에게 질문을 던졌어.

제미나이는 ‘심리적 거리 두기’, ‘선 긋기’, ‘목적만 취하기’ 같은 중간지대를 제안했는데, 이때쯤 되니 피곤해서 더 이상은 머리에 글자들이 들어오지 않더라. 심지어 답변에서도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도 하나의 결정이다’라고 이야기하더라고.


그래서 고맙다는 답변과 함께 대화를 마무리했어.


그런데 내가 찌질한 건지, 계속해서 이유를 찾게 되더라고.

내가 얕은 대화를 잘 못하고 자꾸 깊은 대화를 이어가서 피곤했던 모임장이 나를 조용히 시키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이 들기도 했어 — 이런 추측이 별 의미 없다는 건 나도 알지만,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 사건과는 무관하게, 얕은 대화를 연습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잠에 들었어.

마무리

이번 사건은 내 상태를 지도 위에 표시한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피곤하기도 하고, 요약으로 내 감정과 상태를 단락해버리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 이번엔 요약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들어.


다음번에는 이런 내 감정과 상태를 기반으로 어떻게 행동해볼 것인지, 고민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