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과 그 바로 전날, 거의 잠에 파묻혀 있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그냥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가끔가끔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를 괴롭히는 감정들을 해소하기 위해 클로드와 소통했다. 그 대화 중 — 다시 돌아보았을 때 도움이 될 만한 생각들을 정리해두고자 한다.
독서 소모임에 대한 긴 고민을 하던 도중에 — 마무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 그 관계를 어떻게 끊어낼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과정에서 채널들을 나가야 할 텐데,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리다 나가는 것이 맞을지를 물었다. 클로드는 — 통보를 함으로써 발신 시점에 의무를 다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통보”라는 단어는 이직을 할 때, 업무를 할 때, 나를 끈질기게 힘들게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단어를 들었을 때 먼저 올라온 감정은 — 나의 체력을 소모해야 하는 ‘화’의 시작일 수 있겠구나라는 걱정이었다. 그리고 같이 따라온 의문 — 이게 과연 서로에게 좋은 선택일까.
모임을 끊는다는 결정 자체에는 — 아쉬움이 컸다. 나의 부족함에 대한 아쉬움. 어찌 보면 사소한 말들에 감정이 크게 요동쳐서 모임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자체에 대한 아쉬움. 그 안에는 나의 약함이 느껴지고, 미래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동일하게 회피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함께 있었다.
이 이후로 통보에 대한 내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해봐야 할 것 같다.
클로드는 건강한 책임감과 건강하지 않은 책임감을 구분해줬다. 기준은 어디서 나오는가, 무엇이 따라오는가였다.
그리고 — 건강한 책임감이 어느 순간 건강하지 않은 책임감으로 변하는 순간을 잘 캐치해보라고 했다.
건강한 책임감과 건강하지 않은 책임감을 나누는 방법은 꽤나 와닿았다. 그게 내 마음이 다시 아플 수 있는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준 것 같아서 — 약간의 희망이 느껴졌다.
매번 불안을 이끄는 고민이 반복된다면, 그건 반추라고. 그 반추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방법도 같이 받았다.
이 중 가장 와닿은 건 글쓰기·대화하기로 머리 밖으로 꺼내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감각을 직접 받고 있었으니까.
가장 어렵게 느껴진 건 해결되지 않더라도 그 상태로 두는 능력 기르기였다. 조금만 더 고민해보면 될 것 같은데라는 마음과 너무 피곤해서 고민을 더 하기 힘들다는 느낌이 — 자꾸 부딪힌다. 앞으로 그 기준을 어떻게 새울지 고민해봐야겠다.
회복은 마일스톤이 아니라 천천히 올라가는 평균선.
나아지고, 다시 깊어지고, 좀 더 나아지는 — 그 과정을 통해 회복되는 것이라고. 어떤 날은 더 좋고 어떤 날은 더 깊어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일 단위로 보면 들쑥날쑥해 보이는 곡선이, 주 단위·월 단위로 멀리서 보면 어디로 가는지 보일 거라고.
이 말은 안도에 가까웠다 — 지금 잘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니까.
그치만 대화 중에 — 살면서 상쾌함·평온함·기대 같은 것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는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그 말의 무게는 묘했다. 처음엔 억울함 — 그런 삶이 아니었다는 것에 대한. 그치만 곧 그게 무슨 의미겠어라는 생각이 따라왔고, 그 뒤에 약간의 희망 — 그런 삶을 추구할 수 있을까라는 — 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완성된 글이 아니다. 잠과 잠 사이에서 적힌 메모들이고, 그 정도로만 두자.